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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현 시인 1 식물의 서쪽 / 박성현 (1970~2025) 식물이 창백한 표정을 짓는다. 저 식물의 잎에, 그 잎만큼의 넓이로 알몸을 비볐던 바람이 가만히 멈추어 그 표정의 안쪽을 살펴본다. 민들레국수집 / 박성현 (1970~2025) 내가 본 민들레국수집은 잘 여문 배추처럼.......
- 박성현 시인 2 모호의 밤 정류장 / 박성현 (1970~2025) - 모호 3 나는, 모호라는 이름의 인형을 바라보고 있다 몇 개의 뼈와 단추만 누르면 작동하는 목소리 공중에 오래 머물러 있는 뭉툭한
- 박성현 시인 3 새 / 박성현 (1970~2025) 새가 날아와 곁에 앉았습니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침이면 떠났습니다 어젯밤에는 새의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부리를 열었는데 당신이 벼랑만 가팔랐습니다 당신의 팔과 다리를 들고 벼랑에 올랐습니다 몇 년이고 비와 눈과 바람을 짊어졌습니다 매일매일 새가 날아왔습니다 매일매일 웅크린 당신을 뽑아냈습니다 새의 입장 / 박성현
- 박성현 시인 4 흰눈 / 박성현 (1970~2025) 매일, 흰 눈이 내렸다 가장자리는 높고 안쪽은 따뜻했다 늦도록 기울어진 초승달과 새파란 별이 곁을 지켰다 언덕에 앉으면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박성현 시인 5 봄눈 / 박성현 (1970~2025) 당신을 보내고 온 날 온종일 눈이 내렸습니다 처마에 매달린 구릿빛 풍경이 고드름 녹듯 뚝뚝 떨어졌습니다 발자국이 어지러웠습니다 발목까지 쫓아온 당신의 기척을 들었습니다 눈을 푹푹 밟으며 부산했습니다 나는 바싹 마른 국수처럼 비좁아져서는 봄눈 속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발목까지 쫓아온 발자국을 떼어냈습니다 종이인간 / 박성현
- 박성현 시인 6 한밤 / 박성현 (1970~2025) 나는, 어디서 내 목소리를 들었을까 내 손에 닿은 한밤은 나의 어느 깊이에서 멈춘 것일까 흔들리면서 나는, 흔들리지 않도록 나는, 밤새 비틀거리고 뒤집히고 갈기갈기 찢어지던 나는 이제야 그물 없는 바닥에 가라앉는다고 심연에 버려졌다고 심연을 두고 왔다고 저녁이 머물다 / 박성현 (1970~2025) 바람이 불었네 미세먼지가
- 박성현 시인 7 빙하기 / 박성현 (1970~2025) 당신 두 눈에 서려 있는 얼음이, 먼 하늘로 스며들다 지쳐 우두커니 서 있는 노을 같았습니다 마음만 움켜쥐고 얼어버린 거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 박성현 시인 8 엽서 / 박성현 (1970~2025) 차츰 어두워지는 창문에 거미줄 같은 가을비가 들이칩니다. 파안(破顔)의 너머 / 박성현 (1970~2025) 문지방을 녹빛 애벌레가 기어 올랐다 멀리로는 텃밭이나 가까이로는 화단에서 자란, 그곳이 세계의 전부인 느릅나무나 쑥부쟁이 그늘도
- 박성현 시인 9 멀리 갔던 새가 나를 비집고 들어왔다 / 박성현 (1970~2025) 하루가 기울고 새가 울었다 회색이 짙어 멀리까지 갔다 너무 멀어서 밤이었다 어느 날은 나방이 가득한 숲에서 허기가
- 박성현 시인 10 물고기 나무 / 박성현 (1970~2025) 물고기가 죽었다 모로 누워 깊이 잠에 든 모습이었다 인공 기포를 따라 흐르는 물길 이어받으며 연한 초록 이파리가 흔들렸다 물고기를 빈 화분에 밟는 낯선 기척이 들렸다 오늘은 이파리 세 개가 자랐다 레몬 모양의 잎은 가려운 듯 공중을 긁고 있었다 햇볕이 넓게 펴지자 물고기는 좀 더 남쪽으로 휘었다 따뜻한 방향이었다 - 박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