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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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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인 시인 8
연밥 / 유종인 화사한 연꽃잎이다 하나하나 져 내리다 보니 남은 게 무얼까 궁리할 새도 없이 연탄 밥상이 통째로 올라온다 꽃을 다 보고도 따순 밥을 먹을 수 있다니, 그렇다 치면 입성이 큰 꽃잎들 조각조각 늪물 위에 뜬 걸 건져다 가만히 맞춰봐도 알겠다 밥 먹고 해라 밥이나 챙겨 먹어라
blog.naver.com ·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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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와 시인
잡초와 시인 어느 시인이 꽃밭에 잡초를 뽑다가 “그래, 너도 꽃이다“ 라고 했다지 정원에 잡초가 보일 때마다 허리 굽혀 뽑다가, 뽑다가 끝내 예초기로 잘라버리는 나는 아직 시인이 되기는
blog.naver.com · 2026.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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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인 시인 9
아껴 먹는 슬픔 / 유종인 재래식 화장실 갈 때마다 짧게 뜯어가던 두루마리 화장지들 내 밑바닥 죄를 닦던 낡은 성경책이 아닐까 떠올린 적이 있다 말씀이 지워진 부드럽고 하얀 성경책 화장지! 외경의 문밖에서 누군가 나를 노크할 때마다 나는 아직 죄를 배설 중입니다 다시 문을 두드려주곤 하
blog.naver.com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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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인 시인 10
버섯 / 유종인 교회는 여러 해 전 망했다 뒤꼍에 버려진 십자가는 그게 나무인지라 후일담처럼 십자가에 느타리가 피었다 교회 예배에 한 번도 참석한 적 없는 저 여자의 남편은 발김쟁이고 자식들만 여럿인데 오늘에야 십자가를 새로 봤네 망한 십자가라면 무얼 더 매달랴마는 제 속에서 끌어낸 알
blog.naver.com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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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를 감동케한 시인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발레리의 시를 읽었고, 나는 그 기다림이 끝났음을 알았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해변의 묘지 中 - 폴 발레리 바람이 인댜... 우리는 살려고 애써야 한다 ! 거대한 대기는 내 책을 펼쳤다가 다시 닫고, 포말로 부서질 파도는 감히 바위에 용솟음친다 !
blog.naver.com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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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인 시인 13
새소리 값을 주러 갔다 / 유종인 아파트 화단 한켠에 누가 자루를 내다놨다 얼룩과 곰팡이가 조금 서렸어도 묵은 쌀자루를 보니 산새에게 진 외상이 떠올랐다 겨우내 정발산 텃새들이 내게 들려주길 된바람에 실어 혹은 초조한 겨울 볕에 내놓은 직박구리 오목눈이 곤줄박이 까마귀 딱따구리 동고비.
blog.naver.com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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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인 시인 14
잉어 / 유종인 잉어 보러 가야지 가만히 혼잣말을 하면 허공에 지느러미가 돋고 바람의 입꼬리에 잉어수염을 다는 말, 잉어, 잉어 만나러 가자 늦잠에 어질러진 이불을 개키고 지난밤 듣그럽던 소리들마저 개키고 잉어한테 가자 잉어 수염 당기러 가자 막내딸 여드름이 이쁜 막내딸 사춘기와 손잡고
blog.naver.com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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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인 시인 15
떠도는 산수화 / 유종인 낡은 고물상 트럭 짐칸에 산수화 액자 하나 실려 있네 곰팡이가 기러기떼 나는 가을 하늘까지 피어 있네 궁금한 듯 봄 햇살이 들여다보네 고봉밥처럼 꾹꾹 눌러 담긴 산들이 있고 산자락에 자루 부러진 숟갈처럼 초가 몇 채가 꽂혀 있네 주저앉히면 草墳으로 쓸 만한 묏자
blog.naver.com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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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인 시인 16
섬돌 / 유종인 집은 돌아가고 섬돌은 고령(高齡)이다 비가 와서 겨우내 이 어눌(語訥)에서 풀릴까 했는데 섬돌은 그저 밟히고 쓸려서 한 홉도 안 되는 말의 흙먼지들 깨져나간 한 섬돌 틈서리에 비껴놓는다 어디로 가라는 이 어눌함인가 오르고 내리는 비의 발걸음이, 반듯하던 섬돌 하나 한편
blog.naver.com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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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해 시인 1
돌탑 / 문성해 맨 처음 들판 위로 돌멩이 하나는 앉힌 사람과 돌멩이처럼 단단한 기도를 생각한다 그 사람은 알았을까 큰 산이 쪼개져오듯 저 들판에서 이 들판으로 수많은 돌들이 와서 이리 거대한 탑이 될 줄, 이리 질긴 목숨이 될 줄, 맨 처음 내게 심장을 던져준 이여 저문 저녁이 오고
blog.naver.com · 2026.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