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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초 / 김용만 아버지 얼마나 좋아하실까 ㅡ 우리 집은 시인이 둘이여 아버지 무덤 앞에 깊이 고개 숙였다 알고 보면 풀 냄새 흙냄새가 나를 키웠다 강물 소리는 어쩌고 ●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 김용만 #김용만 #벌초
- 배추 / 김용만 자릴 잡았다 무수한 말들 흘리며 나는 살았다 아직도 하고픈 말들 너무 많다 아끼지 않은 말은 시가 아니다 입 다물어야 속 차오르는 배추밭을 지나며 ●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 김용만 #김용만 #배추
- 반성 / 김용만 나는 나보다 더 착하게 쓴 시가 더러 있다 시인이라면 부끄러운 일이다 ●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 김용만, (주)창비, 2025.
- 민들레 / 김용만 못했다 그 뜯긴 뿌리 키워 봄이면 보란 듯이 내 앞에 꽃 피웠다 나를 무릎 꿇게 했다 2 내 키가 작다고 그런 소리 마 나를 보려면 너도 작아져야 해 ●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 김용만
- 먹감나무 / 김용만 새벽이면 어머니는 남들보다 먼저 물동이 이고 나가 우물길에 떨어진 홍시를 주워 오셨다 젖이 보타 배고파 울던 아이에게 홍시를 떠먹이셨다 그 달달한 홍시를 받아먹고 자란 아이가 육십 넘어 먹감나무 아래 실금 간 홍시 하나 주워 든다 이 맑은 감을 위해 어머니도 먹감나무도 속을 태우셨구나
- 만추 / 김용만 오늘도 쪽빛 하늘 뒤란 감나무 서정의 붉은 홍시다 인간, 팔이 짧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 ●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 김용만, (주)창비, 2025.
- 한수 양반 / 김용만 허벅지를 치던 고함 소리 들을 수 없겄네 산일 개 잡는 일 돼지 멱따는 일 깨끗이 손 씻었제 윷이야 개 조또 아 저 씨부랄 것이 입 싹 닫아부렀제 ●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 김용만
- 콩 타작 / 김용만 옆에만 살아도 힘들다 했더니 할머니 웃더라 촌부자는 힘들다 도시는 돈만 챙기면 되는데 촌은 가마니째 챙겨야 한다 그래도 씻고 나니 기분이 참 좋았다 ●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 김용만
- 작은 나비 / 김용만 사랑하는 사이 맞다 전봇대보다 높이 올랐다 사랑하면 겁도 없다 나도 저런 때 있었나 마당 나무 밑 쪼그리고 앉아 정신 놓았다 하늘 참 몸썰나게 푸르다 ● 『기역은 가시 히읗은 황토』 김용만 #김용만 #작은나비
- 우중 일기 / 김용만 종일 비가 내렸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내리다 그치다 했다 머리가 허연 마을 초입 할아버지 뒷짐 지고 지나갔을 뿐 종일 아무도 보지 못했다 비를 맞은 초가실 풍경들이 산 아래 엎드려 쓸쓸하고 적막했다 목침을 자꾸 고쳐 베며 아버지는 심심하게 누워 계셨다 나는 아버지 머리맡에 앉아 흰머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