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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수 박사의 조선왕릉이야기] 30. 조선왕릉 숭릉 현종은 효종의 맏아들로서 인조 19년 1641년, 아버지 효종이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을 때 청에서 출생했다.
- 남한산성의 참꽃받이 (Bothriospermum secundum Maxim.) 인조 그 멍청한 왕이 병자호란 때 머물었던 남한산성에서 참꽃받이를 만났다. 꽃받이와 비슷해보이지만 전체에 털이 많아 차이가 많이 난다.
- 경기 광주 불당리 연자방아 vs 고인돌-마을 주민들이 불당 지어 놓고 불교 믿어 붙은 지명인데 연자방아는 뭐지! 이곳에 있던 사찰은 병자호란 때 소멸되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연자방아는 곡식을 찧거나 빻는 방아의 한 가지이다. 연자매라고 한다. 발동기가 없.......
- 한번에 알아보는 조선500년 이후 임진왜란(1592년)과 병자호란(1636년) 등.......
- 쇄미록 둘째 오윤해의 아들인 오달제는 병자호란 때 청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다 끌려 간 삼학사 중 한 명이다. 1591년 11월 27일 지방에 살고 있는 외거노비들에게 공물을 받을 목적으로
- [하인수 박사의 조선왕릉 이야기] 29. 효종의 영릉 즉위 후, 백성들의 조세부담을 덜어주고, 화폐개혁을 단행하는 등 병자호란 이후 민생 안정과 국가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북벌정책을 추진하였다.
- 관어대에서 –이희보 병자호란 때 호조 좌랑으로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호우하였고, 청군과 싸울 것을 주장했으나 조선이 항복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했다.)
- 충민사, 위대한 삶의 흔적을 걷다… 어떤 이야기? 정충신 장군은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 격동의 시기를 겪으며 큰 공을 세웠습니다. 특히 이괄의 난 때는 반란군을 진압하며 전공을 세웠고, 병자호란 시기에는 도원수 김자점의 부원수로 활약했습니다.
- 석촌호수 옆에있는 "삼전도비" 잠실역 3번 출구로 빠져나와 삼전도비로 출발~ 삼전도비 : 병자호란 때 청에 패배하여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고, 인조 17년(1639) 청태종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적은 비석이다
- 왕들은 왜 초상화를 함부로 그리지 않았을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전쟁이 일어나면 왕보다 먼저 어진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 정도로 소중하게 보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