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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해 시인 2 해바라기 / 문성해 하늘 아래 어깨 구부정한 큰 바위 얼굴의 내 사내 같고 암놈 빼앗긴 숫 사자의 실연한 얼굴 같고 누군가의 실수로 잘못 태어난 프랑켄슈타인 같고 구멍 숭숭 뚫린 스펀지같은 상실감이 하나 허공에 걸려 있다 - 문성해 시집 2007 여름 끝물 / 문성해 여문 씨앗들을 품
- 문성해 시인 3 배경이 되는 일 / 문성해 사진을 찍는 남녀의 뒤로 가다가 찰칵 내 뒷모습이 찍혔네 순간 알았네 저이들 뒤에 선 홰나무와 능소화처럼 나도 배경이 되었음을 배경은 나를 최대한 평평히 저미는 일 나를 희미하게 탈색하는 일 저이들이 인화된 사진을 보며 나를 알아채지 못하게 나는 바위처럼 조용
- 문성해 시인 4 혼자만의 버스 / 문성해 시외버스를 탔네 차창에 레이스 달린 분홍 커튼이 쳐져 있었네 구중궁궐 같은 버스였네 승객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네 어여 기사님아, 썬글라스와 뽕짝 노래로 나를 어디로 모셔가나 앞머리를 커튼처럼 자른 나도 오늘은 이 버스의 기분을 알 것 같아 마음속에 들어앉아 저
- 문성해 시인 5 물의 종족 / 문성해 물만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불러본다 물고기 베고니아 버드나무 여름 들판의 옥수수들 그리고 삼 년 전 태안 바닷가에서 주워온 몽돌 한 개 그것은 물만 주면 반들반들한 정수리를 내게 보여주곤 했지 옛날 옛적 담뱃내 쩐 누런 방에서 죽은 외할머니도 사흘간 물만으로 사시
- 문성해 시인 6 검색 공화국 / 문성해 도서실 컴퓨터실에 붙박이로 앉은 사람들 젊어서 천천히 찌그러지고 있는 사람이나 늙어 한꺼번에 찌그러진 사람이나 모니터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웃거나 한숨을 쉬거나 신경질적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지독한 모니터와의 사랑이다 제가 궁금하면 검색해 보세요 그 남자는 여유 있게
- 문성해 시인 7 모란 해후 / 문성해 모란이 핀 것을 네해 만에 본다 모란은 몰래 옛 애인 창문 앞을 서성거리다 가는 모가지가 수굿한 여자 같아서 인기척에 벌컥 열어젖히는 창문보다 먼저 떨어진다 모란은 화가 많아서 제 화를 다스릴 줄 모르는 여자의 아궁이 앞에 발갛게 비춰지는 볼살 같아서 연기가 채 삭
- 문성해 시인 8 산수유국에 들다 / 문성해 그곳 서방정토의 삼월에는 꽃 이름을 앞세운 국가들이 나뭇가지마다 열린다네 단 하나의 시조설화도 없이 산수유국 목련국 진달래국 매화국이 가난한 가지마다 봉긋봉긋 솟아오른다네 향기가 없으면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는 나라 향기로운 코 하나로 누구나 백성이 되는 나라
- 문성해 시인 9 흔들린다 / 문성해 풀들은 아침을 먹고 나서도 흔들리고 낮잠를 자면서도 흔들린다 늙은 개가 뭉뚝한 코를 들이대며 쉰내를 풍겨도 흔들리고 8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매연과 소음에도 흔들리고 천변(川邊)에서 올라오는 악취가 코를 찔러도 흔들린다 내가 어슬렁거리며 적막한 하나를 그곳에 더 보태
- 문성해 시인 10 울음 나무 아래를 지나다 / 문성해 매미 울음 아래를 자전거로 지나는데 울음의 밑은 참 서늘하군요 흔치 않아요 이렇게 울음의 축축한 지붕 밑을 지나는 일은, 거대한 목청 아래를 뚫고 달리는 일은, 한때 목련꽃이 환했던 이 나무 그 때의 꽃들도 다 한 떼의 울음이었죠 울음이 차있던 나무의
- 문성해 시인 11 오래된 거울 / 문성해 그 기사식당 벽에는 아주 오래된 거울이 하나 걸려 있다 더운 찌개의 김으로 한번도 무엇을 비춰본 적 없는 거울이 이제는 켜켜이 쌓여진 먼지로 희뿌연 자태를 용인하며 식당이 생긴 이래 한번도 바뀌지 않고 그 자리에 걸려 있다 간혹 그 속으로 이쑤시개를 들이밀며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