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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영모정, 팽나무고목과 영산강을 굽어보는 명승지/영산가람풍류낙도길
이 중종 15년(1520)에 지은 정자로 처음에는 그의 호를 따서 귀래정이라 하였으나 명종 10년(1555)에 후손이 다시 지으면서 영모정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한다.
-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영을 내려 전국의 범종과 불상을 녹여 총통을 만들게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무기 제조가 급선무일 때 사찰의 범종과 불상을 녹여 총통이나 대포 같은 화약 사찰의 종이나 불상을 녹여 무기를 만든 가장 대표적인 임금은 중종(中宗)이다. 중종 시기에는 극심한 억불 정책과 국방력 강화를 명분으로 서울 흥천사와 흥덕사의 대종을 비롯해 경주 동불상 등을 녹여 총통과 군기를 만들었다.
- 행주대첩(幸州大捷)을 승리로 이끈 권율(權慄)장군은? // 돌중 해붕당 법운 밝은 지혜.. 권율 [權慄]장군은 1537(중종 32)∼1599(선조 32). 조선의 문신임에도 임진왜란(壬辰倭亂) 시기 장수로서도 크게 활약했다.
- 부마는 행복했을까?(41) 중종 7년(1512) 출생하였고 중종 22년(1527) 작서(灼鼠)의 변(變)에 연루되어 혜순옹주의 계집종들이 추국을 받았다. 중종 28년(1533) 일어난 가작인두(假作人頭 사람의 머리를 인형으로 만듦) 사건으로 어머니 경빈 박씨와 오빠 복성군은 사사되었고 혜순옹주와 남편 김인경 또한 같은 사건에 연좌되어
- 부마는 행복했을까? (45) 중종 20년(1525) 출생하였고 남편 구한이 죽고 난 후 사위와 간통을 저질러 명종 19년(1564) 문정왕후에 의해 사사되었다. 중종 19년(1524) 출생하였고 중종 29년(1534) 숙정옹주와 혼인하여 능창위가 되었다. 1555년 사옹원 제조 등을 지냈고 명종 13년(1558) 사망하였다.
- 명나라 사신 싸가지 없다고 실록에 써놨던 일화 조선 국왕 이역(중종 본명)은 참 좋은 사람이었고 어쩌고 저쩌고....
- 조선 고택의 품격이 머무는 공간, 안동 임청각 임청각은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조선 중종 때 건립한 주택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집이기도 해요.
- 관수정 조선 중종 34년(1539)에 관수정 송흠(1459∼1547)이 지은 정자로, 관수정은 맑은 물을 보고 나쁜 마음을 씻는다는 뜻이다. 중종 33년(1538)에는 청백한 관리로 뽑히기도 했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 ♧ 조광조 어머니의 교훈... ♧ . ♧ 조선시대 희대의 폭군인 연산군이 중종 반정에 물러 나고 중종시대의 원칙과 백성을 위한 충정을 고집하여 무모하도록 강직했던 신하가 바로 조광조이다.
- (문신, 육괴정) 남당 엄용순, 부인 안동권씨 -영월엄씨- 중종 때 2명의 형과 함께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은거 생활을 하며 학문에 정진하였다.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의를 숭상하며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1519년(중종 13)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림들이 대거 숙청되자, 연산군 때 갑자사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