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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임금 17대 왕 효종 가계도 후금(청)이 1627년 "정묘호란"에 이어 1636년 12월에는 "청나라"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조선을 침략해(병자호란) 항복을 받아내면서 7살 위의 형(소현세자)과 함께 봉림대군은
- [2027 수능특강] 최명길 '정처관군동' 분석 - 김상헌과 나눈 병자호란의 고뇌 앞서 살펴본 김상헌의 시에 이어, 이번에는 병자호란 당시 주화파를 대표했던 최명길의 한시 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 [2027 수능특강] 김상헌 '성패관천운' 완벽 분석 - 병자호란의 절개와 원칙 오늘은 병자호란 당시 끝까지 절개를 지켰던 척화파의 영수, 김상헌의 한시 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 영화, 한국사에 말을 걸다 / 박준영 / 하빌리스 기록상 10만명을 넘는다고 하지만 팔기군의 숫자만큼이라기 보단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의 군대를 5만 명 정도로 봄이 적당할 듯.
- 함양 농월정 수많은 선비들이 달을 희롱하며 풍류를 즐기던 정자/함양가볼만한곳 농월정은 박명부(朴明傅)가 병자호란 때 굴욕적인 강화가 맺어지자 벼슬을 물러나 은거하면서 지은 정자이다.
- 201. 김득신(金得臣)의 시 많은 저술이 병자호란 때 타 없어졌으나, 문.......
- 진주 괘방산 등산코스~! (어석재~흔들바위~작은방어산~마당바위) 전설에 따르면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며 300근짜리 활을 쏘는 묵신우(墨神祐)라는 장군이 병자호란 때 성을 쌓고 성문을 닫은 채 한 달을 버티다가 비로소 적을 물리쳤다고
- 조용히 걷기 좋은곳 '남한산성' 특히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피신했던 역사적인 장소로도 유명하다.
- 父에게 버림받은 소현세자와 세자빈 민회빈 강씨 인조의 장남인 소현세자는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있으면서 실용주의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반청(反淸) 인조와 대립하다 독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습니다.
- 190. 윤순지(尹順之)의 시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아버지가 평안도관찰사로서 적의 침입을 막지 못한 죄로 사사(賜死)되자 10년 동안 은거하였다. 1629년 홍문관부교리에 다시 등용되고, 1636년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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