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립
인물강홍립(姜弘立, 1560년~1627년 9월 6일(음력 7월 27일))은 조선의 문관, 군인이다. 광해군 때 명나라에 지원병을 이끌고 참전했으나 후금(청나라)의 교전을 피하다가 투항했다. 자 군신(君信), 호 내촌(耐村),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작위는 진녕군(晉寧君), 1605년(선조 38년) 청난원종공신 2등에 책록됐다. 1597년(선조 30년) 문과 알성시에 병과로 급제, 1599년 함경도 도사, 1601년 성균관 전적, 공조정랑, 1602년 사헌부장령, 홍문관 수찬 1604년 교리, 부수찬, 성균관사예 등을 지냈다.
- 출생일
- 15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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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신) 형백 박난영[충숙공], 정경부인 문화류씨 -고령박씨- 선조 때 면천군수(沔川郡守)·중군(中軍) 등을 거쳐, 1619년(광해군 11)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후금(後金) 정벌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 강홍립 : "사르후 전투에서 포로가 된 후 부사령관 김경서를 청에 밀고하여 죽게 했다"고 하는데, 그는 과연 충신인가 역적인가? 조부 강사상(姜士尙)은 우의정을 하고 부친 강신(姜紳)은 병조와 이조 판서를 한 명문가의 집안에서 태어나서, 30세에 진사에 38세에 문과에 합격하였다. 함경도 병마절도사, 수원부사, 함경도 순검사, 형조참판, 좌참찬, 한성판윤을 역임했다. 강홍립은 외교전략과 중국어에 능통해 적임자로
- ☆ 청나라와 조선 지도층의 비교 강홍립 : 문관. 최고사령관으로 사르후 전투에 참전하여 인조의 밀지(密旨) 받고 후금에 항복했는데, 과연 충신인가 역적인가? 4. 장만 : 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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