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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수 박사의 조선왕릉 이야기] 28. 조선왕릉 휘릉 장렬왕후의 생애와 예송논쟁으로 본 조선 왕실 정치사의 이면 무자식 왕비의 굴곡진 삶과 풍수가 전하는 휘릉의 역사적 의미 휘릉은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莊烈王后)의 단독능이다. 인조 16년 14세에 왕비로 책봉되어 숙종 14년 1688년 8월 26일 창경궁 내반원에서 65세로 소생 없이 승하하였다. 그해 12월 16일 동구릉에 모셔졌다.
- (성북)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함종어씨 의릉(懿陵) (성북)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함종어씨 의릉(懿陵) 서울 성북구 석관동 333-2서 의릉(懿陵)은 조선 20대 경종(景宗)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宣懿王后) 함종어씨의 능이다. 경종(1688~1724, 재위 1720~1724)은 숙종(肅宗)과 옥산부대빈 장씨(희빈 장씨, 묘호는 대빈묘로 서오릉에 있다.)의 아들로 1690년(숙종 16)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 (고양)숙종 계비‧후궁 장희빈의 대빈묘(大嬪墓)-서오릉- (고양)숙종 계비‧후궁 장희빈의 대빈묘(大嬪墓)-서오릉- 경기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475-95 대빈묘(大嬪墓)는 조선 제19대 왕 숙종(肅宗)의 후궁이자 계비이며, 경종(景宗)의 취선당에서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혐의를 받고 숙종 27년(1701) 10월 사사되었다.
- 부마는 행복했을까?(46) 선조 36년(1603) 출생하였고 광해군이 즉위하여 영창대군을 역모죄로 사사하고 계비 인목대비를 폐출시켜 서궁(西宮)에 감금할 때 공주도 폐서인(廢庶人)되어 서궁에 감금되었다. 1623년 숙종 11년(1685) 사망하였다. 영안위 홍주원(洪柱元)의 본관은 풍산(豊山, 司正公系)이.......
- 조선시대 '숙종-장희빈-인현황후' 삼각 스캔들 1694년(숙종 20년) 한양 보경당. 차가운 밤공기를 뚫고 흐느낌과 저주의 주문이 흘러나왔다. 당시 20대의 혈기 왕성한 왕 숙종(이순, 당시 20세)은 정비인 인경왕후를 사별하고 계비 인현왕후 민씨(당시 15세)를 맞이했다.
- 인원왕후(仁元王后) 김씨의 행록 - 숙종의 비 그 글에 이르기를,“우리 대행 자성은 바로 우리 성고(聖考) 숙종 대왕의 계비(繼妃)로서, 성은 김씨(金氏)이고 본관(本貫)은 경주(慶州)인데, 시조는 김알지(金閼智)이니 세조(世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