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탁
인물우탁(禹倬, 1262년 ~ 1342년)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단양, 자는 천장(天章)·탁보(卓甫), 호는 백운(白雲)·단암(丹巖)이다. 단양 우씨 시조 우현(禹玄)의 7대손으로, 남성전서문하시중(南省典書門下侍中)으로 증직된 우천규(禹天珪)의 아들이다. 1278년(충렬왕 4) 향공진사(鄕貢進士)가 되고, 과거에 급제하여 영해사록(寧海司錄)이 되었다. 영해사록(寧海司錄)으로 있을 때 요신(妖神)의 신사를 철폐하였다.
- 직업
- 문신, 학자
- 출생일
- 12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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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부상소[持斧上疏] "우탁"선생의~~ #.김상홍 학장님의 글(2014.08.17일)에서 ..
- ▣ 禹倬(우탁. 1263∼1342) ▣ 禹倬(우탁. 1263∼1342) ▶暎湖樓 영호루에서. 禹倬 嶺南游蕩閱年多 영남에서 호탕하게 여러 해 놀았건만 最愛湖山景氣加 경치가 더해지는 호수와 산을 가장 사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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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헌서원 이색.父이곡.외조부 김택.외외조부 학성이씨 이춘년 이후 영해부사로 부임온 우탁(1262~1342)을 만나면서 개경에 올라가 출세를 시작했다.(출처 문화재청국가유산포탈 가정목은선생문집) 이곡의 이들이.......
- 단양 7경 사인암 . ◈ 사인암 유래 사인암은 고려 말 경사와 역학에 능통했던 대학자 역동 (우탁)(1236~1243) 선생으로 임금을 보필하던 직책 높은 (4품) 사인으로 재직할 당시 이곳에서 머물면서
- 단양여행 단양팔경 선비들의 풍류와 여유가 남아있는 이곳 사인암 사인암의 이름의 유래를 들어보니~ 고려 말 학자 우탁 선생의 벼슬이 정 4품 '사인재관' 벼슬이었을 때 이곳에서 휴양을 하던 곳이라 하여 사인암이라 불리게 되었다.......
- 동문선(東文選)시(詩) – 비파행(琵琶行) 가계: 문하시중을 지낸 우중대(禹仲大)의 둘째 아들이며, 고려 말의 대학자 우탁(禹倬)의 숙부이다. 주요 활동: 벼슬이 판서(判書)에 이르렀다.
- 동문선(東文選)시(詩) – 청금(聽琴) 가계: 문하시중을 지낸 우중대(禹仲大)의 둘째 아들이며, 고려 말의 대학자 우탁(禹倬)의 숙부이다. 주요 활동: 벼슬이 판서(判書)에 이르렀다.
- work-161 단양 사인암(舍人巖) 고려시대 임금을 보필하는 벼슬인 정4품 사인(舍人) 우탁(禹倬) 선생이 이곳에 자주 머물러 휴식을 취했다는 데서 사인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우탁 선생은 누구인가? 그는 고려말 충선왕의 패륜을 극간하다가 진노를 입어 예안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 우탁 - <한 손에 막대 잡고> ᄒᆞᆫ 손에 막ᄃᆡ 잡고 우탁 ᄒᆞᆫ 손에 막ᄃᆡ 잡고 ᄯᅩ ᄒᆞᆫ 손에 가싀 쥐고 늙ᄂᆞᆫ 길 가싀로 막고 오ᄂᆞᆫ 백발(白髮) 막ᄃᆡ로 치려터니 백발(白髮)이 제 몬져 알고 즈럼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