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렬왕후
인물장렬왕후 조씨(莊烈王后 趙氏, 1624년 12월 16일(음력 11월 7일) ~ 1688년 9월 20일(음력 8월 26일))는 조선의 제16대 국왕인 인조의 계비(繼妃)이다. 본관은 양주(楊州). 정식시호는 자의공신휘헌강인숙목정숙온혜장렬왕후(慈懿恭愼徽獻康仁淑穆貞淑溫惠莊烈王后)이며, 한원부원군(漢原府院君) 조창원의 딸이다. 자의대비(慈懿大妃)로도 불린다.
- 출생일
- (양력)
- 출생지
- 조선 충청도 직산현 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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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조에 의해 4년간 유폐생활을 한 장렬왕후 장렬왕후는 흔히 '예송논쟁'으로 알려져 있는 인조의 계비다. 인조의 첫 번째 왕비인 인열왕후가 늦은 나이에 막내를 출산하다가 사망하면서 인조가 계비를 들이게 되었다. 예전에 JT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에서 고원희가 연기한 캐릭터가 바로 장렬왕후다. 장렬왕후는 귀인 조씨의 이간질로 인해
- 장렬왕후 (휘릉-동구릉) 인열왕후가 죽고 43세의 인조는 14세의 장렬왕후와 가례를 올린다. 인조가 승하할 당시 장렬왕후는 불과 25세로 세자(효종)보다 다섯 살이나 적었다. 효종이 즉위하자 자식도 없이 젊은 나이에 대비가 되어 평생 예송논쟁에 휘둘렸다. 효종이 죽자 대비가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가 하는 1
- 18대 현종, 명성왕후 (숭릉-동구릉) 효종이 죽자 할아버지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장렬왕후)가 몇년간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로 국력을 소진했다. 1년상을 주장한 서인과 3년상을 주장한 남인이 대립한 1차 예송논쟁은 서인의
- 장렬왕후(莊烈王后) 조씨의 지문 - 인조의 비 지문(誌文)에 이르기를,“삼가 생각건대 우리 장렬 왕후(莊烈王后)는 인조 대왕(仁祖大王)의 계비(繼妃)이다. 중곤(中壼)에 계신 지가 12년이고, 동조(東朝)에 계신 지가 39년이었는데, 일찍이 내전의 말이 밖에 나갔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고, 또한 일찍이 한 가지의 정사에라도 간여했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