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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가 사랑한 유일한 여인 의빈 성씨 의빈 성씨와 관련된 이야기는 워낙 유명해서 쓰지 않으려고 했으나 드라마를 워낙 재밌게 보기도 했고 정조의 여인에 대해 연구한 논문이 있어 끄적여 보려고 한다. 조선시대 후궁 중에서 이렇게 세세하게 이름과 행적이 남겨진 여인은 의빈이 유일할 것이다. 의빈은 영조 29년인 1753년 7월 8일에 성윤우와 부안 임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 정조의 정비 효의왕후: 입궁이후 순탄치 않았던 궁중생활 안타까운 것은 효의왕후가 불임이어서 평생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것이며, 이것이 후궁 간택에 이용되는 핑계거리고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효의왕후는 웃어른을 공경하고 잘 모시는 착한 며느리였지만 정조의 후사가 없어 줄줄이 간택후궁들이 무품 빈으로 입궁했다.
- 정조가 죽도록 싫어해 사사당한 숙의 문씨 여러 사람들 가운데 영조의 후궁인 숙의 문씨에 대한 정조의 분노는 대단했다. 숙의 문씨의 입궁 과정과 후궁 생활 정조 즉위년 실록을 보면 "문성국이 살무사와 같은 독한 성질이 있다.
- 수빈(綬嬪) 박씨의 지문 - 정조의 후궁(순조의 생모) 휘경원(徽慶園)의 지문(誌文)에 이르기를, “빈(嬪)의 성은 박씨(朴氏)로 가계(家系)가 반남(潘南)에서 나왔는데, 사로왕(斯盧王)의 후예이다. 박상충(朴尙衷)은 고려 공민왕 때에 도의(道義)로 드러나 학자들이 반남 선생(潘南先生)이라고 칭하였는데, 본조(本朝)에서 문정(文正)으로 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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