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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영남권 기업들이 집중적으로 정부지원 받았던 이유 이 시기에 가장 강력한 야당인 민주국민당은 한국민주당(한민당)의 후신이자 민주당의 전신이다. 이 악연은 그 뒤 한민당 계열 정당들이 반이승만 노선을 표방하는 원인이 됐다. 그 같은 한민당 계열 정당들의 최대 거점이 위 보고에 나타나듯이 호남 지방이었다.
- “인촌 선생 노력으로 제헌 헌법 기틀 마련” 인촌 고택은 당시 한국민주당 당수였던 인촌 선생과 고려대 유진오 교수, 한민당 인사들이 민주공화제 헌법 초안을 논의했던 곳이다.
- 친일청산 지지했던 무소속 의원들... 불안했던 대통령이 한 일 이승만을 지지하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55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되고, 29석을 차지한 한국민주당(한민당)이 그 뒤를 이었다. 210명을 뽑는 2대 때는 무소속이 126명으로 늘어났다
-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은 황두연... 76년 만에 복원된 탄원서의 증언 그의 상대는 한민당 후보 김양수(1896~1971)였다. 김양수는 순천 지역의 대지주 집안 출신으로 일본 와세다대학과 미국 컬럼비아대학, 영국 런던대학에서 수학한 엘리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