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소왕
인물효소왕(孝昭王, 677년 음력 2월 ~ 702년 8월 24일(음력 7월 27일), 재위: 692년 8월 20일(음력 7월 3일) ~ 702년 8월 24일(음력 7월 27일))은 통일신라 시대 신라의 제32대 왕이다. 김(金)이고, 이름은 이홍(理洪, 후에 이공(理恭)으로 개명)이다. 신문왕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일길찬 김흠운의 딸 신목왕후이다. 691년 태자가 되었고, 692년 음력 7월에 신문왕이 붕어하여 왕위에 올랐다.
- 출생일
- 677년
출처: 위키백과 · 더보기 →
블로그
- 삼국사기: 효소왕 삼국사기: 효소왕 신문왕이 죽고 태자 이홍(理洪)이 왕위에 오른다. 공(恭)이라고도 한다. 어머니는 신목왕후 김씨다. 측천무후가 사신을 보내 조문하고 제사를 지낸다.
- 설악산 신흥사(雪嶽山 新興寺). 향성사란 ‘중향성불토국’이란 뜻으로 지금의 자리에서 동방 약 1 km 지점에 세웠으나 49년 후인 701년(효소왕 10년)에 화재로 불타 없어졌다.
- 천마산 중화사 부처님 529 # 대표전화 : 043-742-2057 # 소개 영동의 천마산 자락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676년(신라문무왕 16)에서 701년(효소왕
- 만주한반도 남북국 시대 전기의 열도 일본국과의 교류 : ‘도래인의 동진과 에미시의 후퇴’의 인류학적 조망에서 전기는 신문왕-효소왕-성덕왕-효성왕-경덕왕-혜공왕-성덕왕으로서 681년 부터 785년 까지로 보게 된다.
- 달홀 고구려접빈다례 서곡 숨 쉬고 있었네 진흥왕 북진 그 뒤로 화랑의 길이 열렸네 삼국 통일 큰 뜻 품고 몸과 마음 닦던 순례의 땅이었네 [Verse 2 _Female vocals] 통일 열두 해 지나 효소왕
- 경주에서 신라의 석탑들을 보다 황복사지 삼층석탑 효소왕 원년(692)에 신문왕비인 신목태후와 그 아들인 효소왕이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효소왕의 뒤를 이은 성덕왕이 706년에 다시 부처님 사리와 순금불상 등을 봉안하여 신문왕과 효소왕 두 왕의 명복, 왕실의 번영, 그리고 태평성대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 경주 인왕동사지 신라 사람들은 그의 귀국을 기원하며 관음도량을 열었으나, 효소왕 3년(694)에 김인문이 귀국하던 중에 죽자 그의 극락왕생을 빌며 미타도량으로 바꾸었다.
- 경주맛집 토함혜 경주관광지 소개 효소왕릉 효소왕(재위692~702) 신문왕의 맏아들, 성덕왕의 형 신문왕이 죽자 6세의 나이로 왕으로 등극 비록 어린 나이에 등극하였지만 대신들의 도움으로 아버지 신문왕의 제도를 유지할 수
- 시장의 형성 - 시전 난전 그리고 육의전 신라에서는 그 뒤 지증왕 10년인 509년에 도읍지의 동쪽에 동시를 설치하고 시장을 감독하는 관청인 시전을 두었으며 통일신라 시대 때인 효소왕 4년인 695년에는 서쪽과 남쪽에 서시와
- 신라왕조 계보 21대 소지 마립간 22대 지증왕 23대 법흥왕 24대 진흥왕 25대 진지왕 26대 진평왕 27대 선덕여왕 28대 진덕여왕 29대 태종무열왕 30대 문무왕 31대 신문왕 32대 효소왕